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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

네 번째 정전

 

방글라데시에는 여섯개의 계절이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건기와 우기 혹은 더울 때와 추울 때가 있는 것 같다고 하자 방갈리들은 웃으며 아니라고 한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우기가 빨리 왔다. 요 며칠 하루에 두세번씩 비가 오는데, 비가 오면 이제 요령이 생겨 창틀엔 수건을 갖다 놓고, 모든 전기 스위치를 무의식적으로 끈다.

하도 비가 오니까 한국에서 비오기 전에 있던 신경통(?)도 자동 없어졌다. 여름이면 손목에 늘 붙어있던 파스와도 작별을 한 지 2년 째다.

비가 오면 비와 함께 정전이 되는데(아직도 궁금한 것은 번개가 치기 바로 직전 혹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동시에 정전이 되는데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것일까 누가 끄는 것일까),작년 여름 한국에서 큰 정전으로 난리가 났던 것과 대조적으로 여긴 일상이다.

정전이 길어지면 노트북 배터리도 끝나고, 충전 선풍기 충전도 다 되고, 충전등도 방전 될까 화장실 갈 때만 써야하는데 내가 사는 곳은 전력 사정이 좋은 곳이라 보통 이런 사태까진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드물게 이런 상황이 오는데 오늘이 그 날이다. 비 바람 청둥 번개가 두 시간 넘게 지속되더니 첫 정전은 4시간, 두 번째 세 번째를 거쳐 지금은 네 번째 정전 중이다. 한 주전에 다녀 온 네팔은 지역별로 정전 시간표가 있던데, 여긴 기약 없이 그 분이 오시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은 늘 바쁘고 피곤한 생활을 하니까 정전 될 때 자면 좋겠다고들 한다. 제 때 정전되면 속편히 자면 좋겠지만 정전이 길어짐 펌프도 안 돌아가 물도 끊기고, 수도에서 힘들게 아이스팩에 넣어 이고지고 온 독일 아저씨가 만든 소시지가 냉동실에서 해동되는 참상이 벌어진다.

뭐 이젠 정전일 때 모기가 돌아다녀도 식스센스를 이용해 모기를 잡을 수 있고, 빨래하다 전기가 나가거나 밥을 하다 전기가 나가도 놀라지도 않는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가 불이 나가도 밥을 계속 먹을 수 있는 능력도 생기게 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지낼 날도 이제 네달도 안 남았다 생각하니 이 정전마저도 그리워질 것 같다. 네팔에서 하니가 늘 보던 풍경을 보면서 떠난다 생각하면 벌써 그리워진다고 말하던 게 백번 공감이 간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들으며 어둠 속에 하릴없이 아이패드를 붙들고 누워있는 오늘이 그리 울 것 같다. 그나저나 여수 밤바다에 가면 근처에 횟집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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