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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ladesh/journey

타고난 먹을 복(福)

방글라데시를 오며 은근히(!)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체중감량이었다.
하지만 손으로 밥을 자유자재로 먹기 시작하며 나의 몸무게도 그에 비례해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똘까리(인도식카레)를 먹으면 며칠 간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똘까리는 그냥 한 달에 한 두번 먹어야 적당한 pizza 같은 외국음식이었다.
하지만 이젠 옆 집 밥 하는 냄새만 맡고도 메뉴를 알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고, 출근하는 날 점심은 매번 기관에서 똘까리를 먹고 주말이면 현지인들 집을 전전하며 똘까리를 얻어먹다보니 이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처럼 계속 먹어도 맛있다.

나의 이런 잘 먹는 모습에 흐믓한 주변 사람들은 나를 길거리서 만나면 망고,리치,파인애플 등을 사서 주기도 하고, 집에 초대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놀러가 밥과 간식을 잘 얻어먹고 온다.
 
최근에는 우리 반 학생인 Safiqul 이 집에 초대해 수업이 없는 금요일에 학생 집을 방문했다. 꾸밀라에서 40분 정도 CNG 를 타고 가면 저겉뿔 이란 곳이 나오는데 그 중심에서도 다시 오토릭샤를 타고 20분 정도 들어가야하는 그야말로 방글라의 시골마을로 놀러갔다.


[Safiqul 집의 할머니와 조카들 ]


대부분이 흙이나 슬레이트 판으로 지어진 집이었는데, 우리 학생은 형 두 명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일을 나간 덕분에 동네에서 제일 번듯한 벽돌집에 살고 있었다. 

내가 온단 소식에 근처에 알리아마드라사(무슬림학교) 교장으로 있는 작은 아버지와 공직에서 일하는 동네의 삼촌 등 동네에서 한 자리 하시는 분들이 모두 집으로 와 나를 맞이 해 주셨다. 소개를 받으며 들어와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망고와 오렌지와 사과와 까탈과 비스켓, 짜나쭐(방글라과자) 등이 상이 부족하게 줄줄이 나왔다.



[ 부엌에서 까탈까는 며느리 & 핸드메이드 삐타]


밥 먹기 전에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빛의 속도로 집어 먹고 있었다. 한국엔 망고와 까탈이 없기 때문에 보통 이런 과일들이 나오면 나는 이성을 잃고 폭풍흡입을 하게 된다.

간단한(?) 간식을 먹고, 금요일이라 모스짓에 기도하러 간 사이 나는 학생 어머니와 며느리들 사이로 들어가 그 분들이 궁금해 할 백한가지 궁금증들을 풀어주며 점심을 기다리기로 했다.
여자들은 손님이 왔을 때 아이들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고, 잘 나와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부엌으로 진입해서 방글라어로 인사를 건내자 모두들 반갑게 맞아 주시며 방글라데시 아줌마들이 궁금해 하는 best 10 을 역시나  물어보셨다.
 
* 10개월 간의 아줌마들의 질문 출제 빈도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결혼을 했는가, 안 했다면 지금 누구와 방글라데시에 사느냐
2. 한국의 주식은 밥인가 빵인가
3. 밥과 집안 일은 누가 하느냐
4. 월급은 얼마를 받느냐
5. 종교가 무엇이냐 

이런 빈도수 높은 질문들에 대해선 아나운서처럼 매끄럽게 설명이 가능하다. 특히 무슬림이 90% 가까운 방글라데시에선 결혼 안 한 콩알만한 여자애가 집에서 혼자 밥을 해 먹으며 종교도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의 반응은 아주 폭발적이다.



[ 점심 먹기 & 내 앞에 앉으신 교장선생님 ]


남자들이 모스짓에서 기도를 마치고 오자 손을 씻을 물을 내오기 시작한다. 나도 손에 물을 묻혀 소금으로 그릇을 박박 문지르고 손을 헹군물로 그릇도 함께 헹궈낸다. 이 시골에서 외국인이 왔다고 닭똘까리도 2종류, 밥도 2종류, 생선과 나물까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내왔다. 숟가락을 줄까라고 물어봤을 때 '방글라 음식은 손으로 먹어야 맛있죠!' 라는 효자 멘트를 날려주면 밥상에서의 분위기는 한층 고조된다.



[ 간식먹기 그리고 곧이어 점심먹기 ]


닭고기를 국물과 비벼 한 입 떠 넣어보니 역시. 이 집 밥도 맛있다. 도대체 방글라데시에서 맛없는 집밥은 없는 것인가.
방글라데시는 다 먹었다 싶으면 집 주인이 와서 한 주걱 더 얹어주고, 다 먹었다 싶으면 또 주고 하기 때문에 최대한 천천히 먹었는데 그래도 밥 리필을 4번 받고서야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 저겉뿔 슷하박스 ]
 


[ 도랑에 친 그물을 들어 보여 준 마을 청년 ]


차를 마시고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데 도랑에서 물고기 잡는 그물을 가리키며 한국에도 이런 것이 있냐고 한다. 대답하기도 전에 한 청년이 그물을 연결한 나뭇대 위로 뛰어올라 가더니 발로 뭔갈 조작했다. 물 속에 잠겨있던 그물이 지렛대 원리로 위로 솟아 올랐다. 아, 이런 건 한국에선 못 봤네요. 라고 했더니 모두들 기뻐했다. 마을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뭐라도 구경시켜 주려 했다. 이럴 땐 정말 가슴이 짠하고 고맙다.


[ 뒷집 그리고 건넛집 가족들 ]      

[ 더울까봐 부채질 해 주시는 동네아저씨 & 외쿡인이 궁금해 몰려 든 동네 사람들 ]     


[ 가족 22명이 함께 산다는 동네 아저씨 & 집에 가져가라고 싸 주신 간식 ]   


모두들 집에 초대하고 싶어 하셔서 마을을 한 시간 정도 도는 동안 거의 열 가구 정도를 방문했다. 물론 과일부터 음료수까지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대접 받았다. 진심으로 국빈대접 부럽지 않았다.



돌아오기 전 가족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 전했다. 또 놀러 오라고 하며 마을 입구까지 따라오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꾸밀라 시내로 오는 오토릭샤를 탔다.
돌아오는 길엔 날도 덥고 배도 불러 열심히 졸며 오고 있었다. 중간에 잠시 눈을 떴는데 CNG 기사가 여기에서 인도가 4km 정도 밖에 안 된다고 말을 해 준다. 이 다리 밑에 흐르는 물도 인도에서부터 오는 것이란다. 새삼 내가 한국이 아닌 타지에 살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현경이로 있건, 중국에 시엔징으로 살건, 방글라데시 알로로 지내건 상관없이 먹을 福 하나는 끝내주는 나는, 오늘도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치며 잘 먹고 다닌다.